삼둔 사가리

방태산 자료를 찾으면서 처음 ‘삼둔사가리’란 단어를 보고 깊은 관심이 생겼다.
더구나 예전에 다녀본 적이 있는 곳, 강원도의 오지라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수박 겉핡기식으로 지나다녀 뚜렷한 기억의 자취는 없지만....

우선 ‘삼둔사가리’가 언급되는 책이 있는데, 정감록이다.
정감록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거론되는 한국의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책이다. 정감록은 여러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피장처(피해 숨을 만한 곳)로 보은 속리산, 공주 마곡천, 합천 가야산 만수동 등 이른바 「10승지」를 거론한 부분은 대부분 판본에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삼척 지방에 전하는 이본엔 피장처로 특별히 ‘삼둔사가리’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정감록에 보면 아무리 난리가 나도 능히 피할 만한 곳, 즉 피장처가 있는데 그곳이 삼둔사가리라는 것이다.

삼둔사가리는 조선의 개국조인 이성계의 선조들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특히 평안도-함경도 사람들이 비장의 피난처로 여겨왔다고 전한다.
조선조 세조의 집권 당시 단종복위에 가담했던 사람 중 일부가 내린천을 따라 살둔까지 숨어들어와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6.25전쟁도 피해간 오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세 곳의 '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을 말하며 네 곳의 ‘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적가리(곁가리), 연가리, 명지거리를 말한다.

모두 세상 사람들이 쉽게 찾아 들지 못하는 깊은 오지이면서도 맑은 물줄기가 있고 풍족하진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의 양식이 생산돼 숨어 살만한 곳이다.
물론 이 곳도 알려지면서 피난처라는 말이 곧 무색해지는 세상이 될 것이니...
이미 살둔과 적가리는 56번 국도가 완전포장 된 뒤로(95년) 접근이 용이해 졌으며, 그나마 다른 곳은 아직 험지에 속하고 있다.

<삼둔>


둔(屯)이란 농사 짓기 좋은 펑퍼짐한 산기슭을 말하며, 삼둔 중에서 가장 풍광이 좋고 접근도 용이한 곳은 수려한 내린천 물줄기와 미산계곡이란 절경에 휩싸인 살둔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산다'는 뜻으로 살둔, 한자론 생둔(生屯)으로 표기한다.

56번 국도가 포장되고 이어 광원리∼살둔 간 진입로가 포장된 뒤 "이제 이곳도 아니다"고 실망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살둔은 삼둔 중의 으뜸다운 분위기를 아직도 일부는 간직하고 있다.

살둔에선 우선 살둔산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통나무를 우물 정자 형태로 엮어 올리는 강원도 전통의 귀틀집 방식을 현대화해 이층집으로 올린 살둔산장은 그 독특한 양식으로 '한국의 살고싶은 1백대 집'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살둔산장


통나무로 얼개를 짜고 그 사이를 석회 푼 황토로 메운 산장 안은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함석 지붕이 더울 듯도 하지만 천장 안쪽은 강원도 전통의 굴피나무 껍질을 붙여 더위를 막아낸다.
2층 전망대와 1층 툇마루 일부엔 난간에 의자를 덧붙인 독특한 양식이 적용됐다. 높직이 올라붙은 '앉을 난간'에 올라 집을 둘러싼 수령 1백년 이상의 소나무향을 맡으면 속세를 벗어난 풍취가 대번에 느껴진다.
초록색 지붕과 짙은 갈색의 나무색으로 둘러싸 인 살둔산장은 비록 지난 85년 지어진 20세기 건물이지만 고풍스런 비장 미를 느끼게 하는 묘한 멋을 갖고 있어 산악인과 자칭 '김삿갓'들을 수 없이 끌어 모은 건물이기도 하다.

월둔은 산으로 둘러싸인 내면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다.
광원리에서 상남가는 삼거리를 지나 월둔1교를 지나 월둔고개를 올라가는 비포장길 우측계곡으로 들어가 있다.
달둔은 오대산 줄기인 가칠봉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인 을수골옆 계곡으로 들어가 있으며, 월둔과 달둔에는 사람이 살지 않느다.
달둔엔 예전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터가 그대로 남아 있어 흔적을 엿보이게 한다.


<사가리>


가리(거리)란 사람이 살만한 골짜기란 뜻으로 대표적으로 유명한 곳이 아침가리이다.
아침가리의 지명은 한자로 표기하여 아침 조(朝), 밭갈 경(耕) 자를 써서 조경동이라 부른다.
아침가리란 산이 높고험해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숨겨진 깊이만큼 여태도 봄이면 이름모를 야생화의 천국이 되고 여름이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피서지가 되어주는 곳이다.

사가리중에 접근성이 용이하며 사가리의 분위기를 일반인들이 맛보기 가장 좋은 곳은 적가리다.
다른가리들과 마찬가지로 적가리 역시 몇 년전만 해도 형편없는 산골 계곡이었지만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적가리 상류지점에 개장하면서 승용차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방태산 계곡


휴양림 안의 명물이라면 적가리 계곡 중간의 두 폭포. 상류에 있는 2단폭포(높이 10m 가량)가 '이폭포'고 하류의 높이 3m짜리 작은 폭포가 '저폭포'라니 이름에서 벌써 강원도 산골 정취가 풀풀 흘러 나온다.
이폭포 위쪽에 오토캠프장이 있으며, 저폭포의 위와 옆에는 여러명이 앉을 만한 마당바위와 산림문화휴양관(통나무 숙소)이 자리잡았다.

휴양림 진입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비포장길이 바로 아침가리로 올라가는 길이며, 3백m쯤 올라가다 왼쪽으로 유명한 방동약수가 있다.
방동약수처럼 유명한 약수터에 표지판이 하나도 없이 물어물어 찾아가야 하니 표지판에 인색하다고 불평하지 않을 수 없다.
1670년 심마니가 발 견했다는 방동약수는 광천수로 천연가스가 함유돼 있으며, 급성위장병과 신경쇠약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물로 밥을 지으면 밥이 파란색이 된다고 한다.
약수터 앞엔 장기 음용자를 위해 민박집까지 몇 집 들어서 있으며,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라는 마가목으로 만든 마가목주도 판매한다.

연가리, 명지거리는 강원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원시미를 간직한 곳이다.
해발 1,200m가 넘는 준봉들이 에워싸고 있는 아침가리 계곡의 하류부분 7㎞ 정도는 산악인들이 허리께까지 계곡물에 빠져가면 서 찾아올라가는 절경이기도 하다.
단 계곡 하류엔 걸어갈 길도 없으며 방동리∼월둔을 연결하는 아침가리변 도로는 4륜구동 지프조차 설설 기 어갈 정도로 험한 길이므로 보통 사람들은 들어갈 엄두를 내선 안되는 곳이다.

특히 기린면 진동리의 연가리는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속해 인적이 드물다.
삼둔사가리는 모두 산속에 그리고 계곡가에 있다. 교통이 좋은 살둔 같은 곳은 한여름 피서객들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을 내어, 삶이란 과거를 찾아 천천히 삼둔사가리를 차례로 훑어 보는 것도 좋을 듯...